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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문화재 다자이후 텐만구의 전통 행사

  • 다자이후 텐만구의 전통 행사

미지정
(무형)

​헤이안(平安) 시대에 다자이후의 고급 관료에 의해 궁중의 연중행사를 다자이후로 옮기고 그에 더해 텐만 신전에서 행하게 된 것으로, ‘사도의 연(四度宴-연 4회 열리던 행사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라고 불렸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중국으로부터 기원한 ‘곡수의 연(曲水宴)’, ‘칠석의 연(七夕宴)’, ‘잔국의 연(残菊宴)’이 있으며, 연회에서는 노래와 한시를 읊었습니다.

  • 전통행사 곡수의 연(曲水の宴)

    전통행사 곡수의 연(曲水の宴)

     다자이후 텐만구 히가시진엔(東神苑-동쪽 정원)에서는 매년 3월 첫 번째 일요일에 곡수의 연 (曲水の宴)이 열립니다.
     곡수의 연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음력 3월 3일에 몸을 정결케 하고 잔을 물에 흘려보내어 연회를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353년 중국 동위(東魏)의 서예가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가 난정(蘭亭)에서 열었던 곡수의 연이 유명합니다.
     다자이후에서는 958년에 다자이후의 차관 (大弐) 이었던 오노노 요시후르(小野好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에 폐지되었지만 1963년에 재개되었습니다.
     이관속대(한국의 사모관대), 주니히토에(十二単-여자 관료의 정장) 등 헤이안 시대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완만하게 굽이굽이 흐르는 물가에 앉아, 상류에서 잔이 흘러내려 오는 동안에 와카(일본 고유의 단가, 和歌)를 읊는 모습은 봄을 알리는 풍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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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

 다자이후 텐만구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미치자네(845-903년)는 어릴 때부터 시가(詩歌)에 재능을 보여, 나중에 천황이나 각료에게 강의하는 ‘문장박사(文章博士)’가 되었습니다. 정치가로서도 뛰어나, 결국 태정관 우대신(右大臣)까지 오릅니다. 하지만 901년, 음모로 의해 죄를 뒤집어쓰고 다자이후로 좌천됩니다. 그리고 903년 2월25일, 실의에 빠져 지내다 59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다자이후에 매장되게 되었습니다. 매장지로 향하는 도중, 시신을 태운 가마의 소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소가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곳을 묘지로 정했습니다. 이곳이 후에 다자이후 텐만구가 되었습니다.
 미치자네가 좋은 문인·학자였기 때문에 후에 문예·학문의 신으로서 널리 숭상받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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