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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문화재 오노성(大野城) 유적

  • 오노성(大野城) 유적

[국가 특별사적]

​1350년 전 백제에서 망명한 귀족들과 함께 자연지형을 살려 축조한 고대산성입니다.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의 부소산성을 본떠, 미즈키(성) 등과 함께 백제식 도성의 모습이 지금까지 남아 그 역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자이후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멀리로는 현해탄까지 내다볼 수가 있습니다.

오노성 유적 오노성 유적1

오노성 유적

 오노성은 북쪽에 우뚝 솟는 시오지(四王寺) 산 위에 쌓은 성채입니다. 665년에 축성되어, 200년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동서로 약1.5km, 남북으로는 약3km, 총 길이 약8km에 달하는 성벽(토루·석루)으로 둘러싸인 일본의 최대급 고대 산성입니다.
 다자이후가 정비되면서, 벼나 무기 등을 넣는 창고의 집적지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8세기에는 불교의 힘으로 신라를 대항하고자 ‘사왕원(四王院-사원) ’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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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야 성터(岩屋城跡) 이와야 성터(岩屋城跡)1

이와야 성터(岩屋城跡)

 이와야 성(岩屋城)은 중세 시대의 성터입니다.
 ​1586년 7월 오토모씨(오이타현)의 가신(家臣) 다카하시 조운(高橋 紹運)은 불과 700여 명으로 규슈를 제압하려던 시마즈(島津)씨 (가고시마현)의 병사 2만 명과 이 성에서 맞서 싸웠지만, 전원 전사했습니다. (이와야성 전투) 그 사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가 규슈에 들어가 규슈를 제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단히 전망이 좋은 장소인 이곳에서 ‘서쪽수도’ 다자이후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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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성 유적 기이성 유적1

기이성 유적

 기이성은 다자이후 정청의 남쪽 정면 산 위에 쌓은 성채입니다. 665년에 오노성과 함께 축성되었습니다.
 총 약 6km에 달아는 성벽(토루·석루)로 둘러싸여, 현재 4 군데에서 성문유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도피할 수 있는 성으로서, 또 평상시에는 벼 등의 집적지로서의 기능을 했습니다.

 또한, 정청 건설 시에 정청의 중앙축과 평행하게 정남쪽으로 남북도를 만들었는데, 그 남북도를 따라가면 두개의 산에 걸쳐 세워진 기이성의 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기이성은 정청의 정남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나라 수도 장안·낙양, 나라의 헤이죠쿄(平城京)에서도 볼 수 있으며, 기이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하여 ‘서쪽수도’ 다자이후가 설계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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